류시화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해마다 숫자가 줄어드는 바다거북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붉은머리두루미
풋눈 내려 뭇별들 얼굴 시릴 때
솜옷 꺼내 입고 흩어져 날던 쇠기러기 떼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이마에 부딪치는 늦반딧불이
아침마다 나뭇가지 흔들며
왜 늦게 일어나느냐고 나무라던 긴꼬리딱새
두 손 땅에 짚고 물끄러미 쳐다보던 두꺼비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가시덤불 속에서 돋움발로 웃던 흰제비꽃
손 내밀어 외로움 붙잡아 주던 하늘나리
마음의 작은 흉터들 위로
빛을 물어다 주던 노랑부리멧새
우리 자신을 슬퍼하지 않고는
사랑할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
그때는 몰랐던
상실 후에 알게 되는 것들
류시화
꽃에게서 배운 것
한 가지는
아무리 작은 꽃이라도
무릎 꿇지 않는다는 것
타의에 의해
무릎 꿇어야만 할 때에도
고개를 꼿꼿이 쳐든다는 것
그래서 꽃이라는 것
생명이라는 것
류시화
너의 걸작은
너 자신
자주 무너졌으나
그 무너짐의 한가운데로부터
무너지지 않는 혼이 솟아났다
무수히 흔들렸으나
그 흔들림의 외재율에서
흔들림 없는 내재율이 생겨났다
다가감에 두려워했으나
그 두려움의 근원에서
두려움 없는 자아가 미소 지었다
너는 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다
너 자신이 봄이다
너 자신이
너의 걸작
* 외재율: 정형시에서, 음의 고저(高低)ㆍ장단(長短)ㆍ음수(音數)ㆍ음보(音步) 따위의 규칙적 반복에 의하여 생기는 운율.
여기서는 외부에서 오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은유하는 듯함
* 내재율: 운율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내용 및 표현된 단어에서 느낄 수 있는 운율.
여기서는 내면의 단단함 또는 꿋꿋함, 고통에 굴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하는 듯함
"꽃샘바람에 흔들린다면 너는 꽃"이란 시집에 있는
모든 시들이 마음에 든다.
너무 좋아
세상 사람들이
이 시집을 모두 사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농익은
무르익은
관조하는
해탈한 듯한
지혜로운
아름다운
시들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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