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화
돌의 얼굴에 핀 서리꽃 녹자마자
사방에서 놀이가 펼쳐진다
다년생 뿌리들 촉촉이 촉을 내밀고
사랑받든
사랑받지 못하든
풀들은 앞다퉈 영토를 넓힌다
꽃은 줄기 끝마다 씨앗의 무게 달고
씨앗들은 가장 멀리 몸 던질 채비를 한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성장의 놀이를 멈추지 말라고
서로 격려하는 소리 들리는 듯하다
어떤 고뇌도 행복만큼 헛되지 않으니
원하는 것 다 갖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것도 갖게 되지만
삶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헌정되는 놀이
돌의 얼굴에 다시 서리꽃 피고
저녁이 문득 차가운 손 내밀어도
이 장엄한 유희는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사랑해야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자신의 것으로 만든 다음에 사랑하려 하지 말라고
기쁨의 공식으로 서로를
초대하면서
** 어느 밤 무언가 내 인생이 억울하다고 느끼고 있을 때
잠자리에 들면서 이 시를 읽게 되었다.
삶은 어디까지나 자신에게 헌정되는 놀이
이구절과 함께
성장의 놀이를 멈추지 말라고
이 구절이 마음에 확 와 닿았다.
그 날 밤, 억울함은 내려 놓고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진실
류시화
한 사람이 진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한 사람이 진실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진실한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한 사람이 진실한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
모두가 거짓을 말해도
세상에 필요한 것은 단 한 사람의 진실
모든 새가 날아와 창가에서 노래해야만
아침이 오는 것은 아니므로
한 마리 새의 지저귐만으로도
눈꺼풀에 얹힌 어둠 밀어낼 수 있으므로
꽃 하나가 봄 전체는 아닐지라도
꽃 하나만큼의 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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