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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사적인 이야기

by 명상사랑 2022. 10. 26.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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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라고 적어 놓으니 뭔가 거창한 느낌이 든다.

지난주에 학교로 학생이 2명 찾아 왔었다.

올 해 졸업한 누구 누구라고 하는데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중 한 아이는 금방 기억했다.

수업시간에 얼굴을 본 기억이 거의 없는 학생이다.

항상 업드려서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고등학교에서는 과학시험을 잘 쳤다고 자랑을 한다.

또 한 친구는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이름을 이야기해줬는데도 말이다.

나중에 기억이 났는데 그 때 3반 실장과 반에서 사귀던 여학생이다.

얼굴 이쁘고 하는 행동도 이뻤는데

고등학교를 가더니 더 예뻐져서 나타났다.

 

가끔씩 졸업생이 찾아온다.

콕집어 나를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학교를 방문한 김에 여러 선생님들을 만나고 간다.

참 신기한 것은 그 아이들의 대부분을 거의 섬세하게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름은 거의 잊는게 정상이고

그 아이가 어떤 아이였던지는 공들여 생각해봐야 겨우 생각이 하나 둘씩 떠오른다.

말썽을 많이 부린 아이는 그나마 금방 생각이 나기는 하지만

말썽을 부려 나를 애먹이던 아이들에 대한 애먹었던 감정은 잊고

그냥 반가움으로만 만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스쳐 지나간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반가움도 스쳐 지나간다.

어느것도 금강석에 새겨진 것은 없는듯 하다.

 

어제 3학년이고 지금 가르치는 학생 한 명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다가

윽박지르는 자세와 듣지 않겠다는 의지, 화가 배어난 태도를 보면서

나도 화가 나서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너랑 대화하기 싫으니 그냥 가라고 하고는 대화를 끊어 버렸다.

그 후에도 화는 계속 나고 

어떻게 그 녀석을 길들일까를 생각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년이면 까맣게 잊어버릴 텐데 

지금 이렇게 속을 끓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잘 생각해보면

나이가 들어

경험이 많아져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과거는 없는 것 같다.

과거는 금방 잊어버린다.

그리고 미래도 또한 없다.

지금밖에 없는 삶이라는 느낌이다.

(물론 성현들께서 항상 하신 말씀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 말씀을 체득해가는 것 같다.)

지금에 매달려 아둥바둥 하다가 보니

무언가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든다.

더 이상 이러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다.

이 지금도 곧 과거가 되어 잊혀질 것이고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미래가 또 현실로 다가올텐데

무엇에 매달려 이러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이 체득이 끝까지 남아 

앞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초연하게 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분명 그러지 않을 것이다. 화내고 웃고 슬퍼하면서 살 것이다.)

최소한 어제의 불쾌함을 안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2022.11.02.(수)

다음 날 수업 들어가서 틈이 있을 때

'어제 00이와 대화 하려다가 머리에 열이 나서 죽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니

반 아이들이 모두 깔깔 웃는다.

아이들의 태도에서 평소 00이가 반 아이들과 대화할 때도 가끔은 그런 일이 있었나 유추해 본다.

나는 아이들에게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였다.

어제 너무 화가나서 00에게 소심한 복수를 하였노라고.

무슨 일로 불렀는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마도 평생 그 때 과학쌤이 왜 불렀을까 궁금해 하면서 나를 잊지 못할 거라고.

평생 나를 잊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나의 소심한 복수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00이가 다른 건 몰라도 쌤 눈두덩이의 색깔은 기억할 거라고 그런다.

암튼 그렇게 그 일은 같이 웃으면서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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