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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기억 하나

사적인 이야기

by 명상사랑 2022. 4. 26.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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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라는 내용의 인터넷 신문을 읽어 내려가다가

따뜻한 기억이 하나 떠올랐다.

 

아주 옛날집의 부엌뒤에 뒷방이 하나 있었다.

내가 몇 살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초등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라고 생각된다.

아니면 초등학교 저학년 일 수도 있다.

기억이란 것이 참 정확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생일이라고 어머니가 미역국에 계란까지 요리해서 뒷방으로 넣어 주었다.

그 당시로서는 거하게 생일상을 차려 주신 것이다.

어른들에게 미안했던지 나만 뒷방에서 식사하게 해 주셨다.

그 기억이 너무 좋다.

너무 따뜻하다.

어머니가 내게 해 주었던 수많은 따뜻함이 있었겠지만

어린 시절의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나는 어머니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나를 세상의 수많은 상처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을 수 있게 힘을 주신 바로 그 기억!

감사합니다, 어머니!

 

오늘 집 구조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형재들의 카카오톡 방에서 질문을 던졌더니

오랜만에 5명이 모두 대화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런데 저마다의 기억이 다르다.

같은 집에 살았는데

집구조를 기억하는 것이 다 다르다.

재밋는 현상이다.

 

※ 아래의 그림들 속에는 사랑채가 빠져 있다. 사랑채까지는 그리지 않았다. 오직 윗채만 그렸다.

내 기억

 

1번 오빠 기억
3번 오빠 기억

무엇이 정답인지 알 수가 없다~ㅋㅋ

 

오후 : 현재까지 모아진 의견으로 그린 옛집 구조다!

        과연 이것은 정확할까?ㅋㅋ

 

오후2 : 급기야 큰오빠(1번오빠)가 두뇌를 풀가동해서 옛집 구조를 그렸다.

         이렇던 집이 진화를 거듭하여 현재의 집이 되었으니,

         중간변화가 심하여 최초의 모습과 기억속에서 섞인듯 하다.

         아직도 2번오빠는 이 모양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 부엌 그러니까 정지가 왼쪽에 있었다고.

         정지가 왼쪽에 있었던 것은 새로 집을 짓고난 이후의 일이다. 새로 집을 지은게 74년의 일이라고 한다.

         새집 지을때 아버지가 지붕에서 작업을 하다가 떨어졌었다. 이건 내게도 생생한 기억이다.

         자신이 밟고 있는 섯가래를 망치로 치고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지미희는 다른것도 기억한다.

         지미희 기억으로는 아버지가 척추에 좋다면서 생콩가루를 드셨다고 한다.

         74년에 새로 지은 집도 여전히 조선시대의 양식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아래의 구조는 진짜 조선시대의 것이다.

         정지(부엌)에 물독이 있었단다. 나는 거기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집의 왼쪽에 마중물을 부어야 물이 나오는 펌프를 설치하기 전에는

         마을앞 우물에서 물을 길어와야만 했었던 것 같기는 하다. 이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기억은 정지(부엌)와 뒷방, 안방과 마루가 끝이다. 다른 것은 기억에 없다.

         그리고 내 따뜻한 기억은 뒷방에서 일어났다.

         엄마가 끓어준 미역국과 계란반찬!

         계란반찬은 어른들에게만 어쩌다가 나가는 반찬이었는데

         생일기념으로 나도 먹을 수 있었다.

         지미희는 그 반찬을 지가 다 먹어치웠다고 기억하는데 나는 그 기억 또한 없다.

         따뜻한 상을 받은 기억만 있다.

1번오빠가 두뇌를 풀가동해서 기억해낸 옛집 모습, 그때는 부엌이라하지 않았다. 정지라 했다.

2번 오빠는 자고 일어나니 어머니가 동생이 생겼다고 말해줬단다. 그 동생이 지미희라고~~^^

2번 오빠는 3번 오빠가 우물에 빠진 것을 건져 주었고, 지미희가 냇물에 떠내려 가는 것 또한 건져 주었다.

생명을 2명이나 지켜 주었다.^^

우리집은 아니다. 퍼온 사진이다. 이런 펌프가 있었다. 우리집에도.

 

위의 집 구조가 74년에 새로 지으면서 이렇게 변했었다.

저 부엌옆에 펌프가 있었고 상방 앞에는 아궁이가 하나 있다, 지금도.
부엌은 여전히 가마솥이 걸린 조선시대식 부엌이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난방 방식이 짚불에서 연탄, 연탄에서 석유로 변해가면서 다시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다.
지금처럼 리모델링 하기 전에는 상방에 입식 부엌을 만들어서 썼던 기억도 있다.
그러다가 지금은 이렇게 변하였다.
한 20여년 전, 엄마가 500만원, 내가 500만원을 내고 2번 오빠가 집을 바꾸는 작업을 주로 진행하고,
주말에는 1번과 3번 오빠가 와서 도와주면서 집을 완전 리모델링하였다.
겉 모습은 허름하지만 안은 나름 입식으로 정리되어 있다. 물론 안도 허름하기는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내가 살아오는 과정을 뒤돌아 보면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내용과 별 다를게 없다.
조선시대의 원시적인 삶에서 현대의 삶을 살게 되었다.
마을 우물에서 물을 길어 오다가 집에 펌프가 생겨서 집안에 우물이 들어오는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은 깨끗하고 맛있는 수돗물이 들어온다.
난방과 요리를 위해 가마솥이 있고 짚불을 때던 부엌이, 요리를 위해 곤로를 쓰다가, 난방과 요리를 위한 연료가 연탄으로 바꼈다. 지금은 요리를 위해 가스를 쓰고 난방은 석유로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쯤에 전기가 들어온 것으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사실 그때는 국민학교라 하던 시절이다.) 가족의 숫자를 잘못 말했던 기억도 있다.
한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이 12명이었는데 11명이라고 했던 기억.
그렇던 대가족이 지금은 뿔뿔이 흩어진 핵가족으로 변했다.
형재자매와 삼촌들은 각자의 가족을 가지고 있고, 어머니도 혼자서 따로 사신다.
문명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래된 미래"의 모습과 다를게 없다.
그래서 나는 그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별 감흥이 없었다. 내가 겪은 그대로를 적어 놓았으니까.
그런데 2번 3번 읽으면서 책속의 철학이 들어오게 되고 감동이 생겼다.
 
 
 
 
오늘은 하루종일 과거에 붙잡혀 있다.
시험을 앞둔 시점이라 자습을 시키면서, 수업시간에도 카톡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있고
형제 자매와 과거를 이야기하며 계속 과거를 회상할 기회를 갖는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다.
너무 바쁘고 정신없던 나날 속에 자습이라는 것 덕분에 여유를 누려 본다.
그러나 다시 교무실에 오면 업무가 쌓여 있다.
아~ 이것 언제 다 끝내지 싶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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